'인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에 대하여 그리고 죽음계획서(임종 소망)

 

 

 

 

 

 

 

 

이 책은 원어 제목은 'advise for future corpses'

구글 번역기로 해석하면 '미래의 시체에 조언하다'라는 뜻입니다.

 

이번 글은 세 가지 목차로 이루어 집니다.

  • 이 책을 읽기 전에 추천사항과 읽은 후의 생각

  • 죽음계획서 중 임종 소망에 대한 제 생각

  • 이 책에서 메모했던 구절들

 

이 글을 쓰는 필자부터 읽는 그 누구도 빠짐없이 미래의 시체에 해당됩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추천사항!

목차부터 천천히 소리내어 읽어보기를 추천드립니다.

 

Advice for furture corpses

1. 위험한 상황
2. 저항
3. 좋은 죽음
4. 의사소통
5. 마지막 몇 달

6. 집에서 모신다고?

7. 마지막 몇 주
8. 마지막 며칠
9. 마지막 순간
10. 시신
11. 애도
12. 기쁨

 

이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은 제게 어렵습니다. 한 번 읽은 지금은 많은 부분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인생의 마지막 순간(죽음)은 저에게는 익숙한 존재가 아닙니다.

이 책은 어느날 갑자기 죽음이 다가올 수 있다라는 사실을 전하면서 시작합니다.

그 결과 제게 기존에 없던 아니 의식하지 않았던 죽음과의 거리감을 생깁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죽음)을 바라보았던 이야기를 합니다.

조금은 멀리서부터 점점 가까이 몇 달, 몇 주, 몇 일 그리고 순간 그렇게 죽음을 바라봅니다.

필자가 말하는 것처럼 저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은 가까운 미래에 우리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살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에서는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않습니다.

제게 이 책은 죽음에 대해 인지하게 해줍니다.

다만 이책에서 '죽은 항상 우리 가까이 있으니 열심히 살아라!'라고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필자는 '호스피스'로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 그 순간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삶이 잊혀진 '마지막 순간(죽음)'에 대해 인지하게 만듭니다. 사실 제 자신을 위해서라고는 말하지만 ,

그 결과가 제 자신을 위하지는 못하는 바쁜 삶을 살아가고 바쁜 속에서 '죽음'은 가려져 보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읽어서 지금 당장 인지한다고 하더라도, 제 삶이 바꾸지는 않을 거입니다.

다만 이제는 제게도 '마지막 순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머나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합니다.

'죽음'을 인지한다는게 제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는 알 수 없습니다.

'마지막 순간을 인지하는 자체'가 제게는 중요한 변화입니다.

 

임종 소망

나는 다음과 같은 장소에서 죽고 싶다:

  지금 내가 지내는 방에 책상과 의자는 창문옆에 놓여있다. 거기에 앉아있으면 바깥 풍경이 보인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는 그 때에 내가 보내는 책상을 치우고 그곳에 노인 침대에 누워있고 싶다.

매일 보았던 그 풍경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죽고 싶다.

내가 죽을 때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 나는 친구과 많이 없다고 느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한결같이 꾸준히 어울린 이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와 생각을 여러 생각을 나눈 이들이 있다. 가능하다면 그들이 찾아와주기를 바란다.

나는 다음과 같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사람들이 찾아오길 바란다:

 →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 어떤 종교라도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조용한 기도는 좋지만 찬송가는 좋아하지 않는다.

바라건대, 다음과 같은 사람은 보고 싶지 않다:

 → 떠오르지 않는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형태의 지원과 위로를 받고 싶다. (사람, 읽을 거리, 의식, 음악, 음식, 냄새, 볼거리 등):

 → 내가 좋아하는 시집이 있다. 특정 작가가 아니라 류시화 씨가 모아논 시집인데

'사랑해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등등 혹은 내가 써논 메모들을

내가 읽을 힘이 없다면 누군가 읽어주기를 바란다.

통증을 다스리기 위해 대화를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진통제를 맞아야 한다면,

나는 약에 취하게 되더라도 통증이 완전히 통제되길 바란다.

 예 □ 아니요 □

 

나는 통증을 어느 정도 견디며 깨어 있기를 바란다.

 예 □ 아니요 □

 

 → 특별한 답을 고르지는 못하겠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든 통증이 온다면 이 통증이 익숙해질 때까지는 진통제가 필요하다.

죽음이 임박했을 때, 나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나 예배가 치러지길 바란다:

 → 나 혼자만의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나 혼자만의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죽음의 순간, 나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나 예배가 치러지길 바란다:

 → 가까운 이들이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죽은 후, 나는 다음과 같은 의식이나 예배가 치러지길 바란다:

 → 한 두 시간이라도 좋으니, 잠깐만이라도 죽은 몸(시체)이지만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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